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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01 월간 제74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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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탐방] 자나 깨나 4-H생각, 뼛속까지 4-H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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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길영 전 총장은 요즘 분재와 텃밭을 가꾸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
곽 길 영(전 한국4-H연맹 사무총장)
많은 4-H 가족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곽길영 전 한국4-H연맹 사무총장의 근황에 관한 것이다. 지난 19일 인천 남동구 도림동에 있는 곽 전 총장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아침 5시에 일어나 텃밭을 가꾸는 것이 오전 일과라고 했다. 정원 끝자락에는 70여㎡의 온실을 지어놓고 각종 분재와 야생화 작품도 가꾸고 있었다.
3000여㎡의 텃밭에는 상추, 고추, 가지, 오이, 열무, 땅콩 등 갖가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잡초 하나 없이 깔끔했다. “잡초를 뽑고 나서 돌아보면 또 나 있다”고 웃으며 말한다. 곽 전 총장과 얘기하고 있는 사이 텃밭에서 난 식재료로 점심상을 차려놓고 사모님이 식사하라고 불렀다.
이강유 사모님은 서울여대4-H연구회장 출신이다. 곽 전 총장과 대학4-H활동을 하다가 만나 결혼을 했다. 명실상부한 4-H출신 부부다.
지난 3월 결혼 40주년이어서 중국 상해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곽 전 총장은 일본의 오야마농협 운영사례를 설명하며 두툼한 복사물을 내놓았다. 이 농협은 교통도 불편한 오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30여명 농협 직원들의 노력으로 매실단지를 조성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농협에 들어서면 육종특허로 기여한 사람,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 등 각 영역별로 기여한 인사들을 소개한 팸플릿이 놓여 있고, 이것을 대외홍보와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팸플릿을 2, 3세 후손들이 와서 보고 자랑스러워하고 자신도 계속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곽 전 총장은 “4-H라는 나무는 기부라는 영양소와 자원봉사자의 관리에 의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적·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획기적으로 사업실적을 거두고, 이것이 관계자들의 공감을 이룰 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대리만족을 줘 시너지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곽 전 총장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도 오로지 어떻게 하면 4-H가 다시 한 번 번성할 수 있을지 늘 생각한다. 그의 뼛속까지 4-H정신이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곽 전 총장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 출신이다. 구지초등학교와 구지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상고를 거쳐 국민대 농업경영과와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지역사회개발학과를 졸업했다.
중학생 때 마을단위4-H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방학 중에 고향에 돌아오면 4-H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던 곽 전 총장은 대학4-H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4-H와 자신의 삶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69년도에 전국대학4-H연구회연합회 제7대 회장을 지냈고, 1970년도에 한미재단 4-H동문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당시 대학4-H야영대회를 준비하면서 돈 한푼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했다고 한다. 야영대회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막막했다.
이때 그는 농촌의 현실과 대학4-H회의 역할,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들인 회원들의 능력배양을 위한 야영교육의 중요성 등을 편지로 써서 청와대로 보냈다. 얼마 후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곽 전 총장은 한은수, 최영자 회원과 함께 육영수 여사를 면담했다. 비서관들은 시간을 재면서 30분만 면담하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곽 전 총장은 우리 농업의 현실과 4-H의 활동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대통령 영부인과의 면담은 4차례나 계속돼 첫 30분 만남에서 3시간씩이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때 곽 전 총장은 신뢰성 있는 통계자료와 논리로 육여사에게 설명했고 육여사는 농업에 대한 사랑과 열의로 가득찬 곽 전 총장의 고언을 들어줬다고 한다. 이때 곽 전 총장의 요청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농촌청년’이라는 휘호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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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전 총장은 서울여대4-H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강유 여사와 결혼한 지 올해로 40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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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4-H시절 한국농업근대화연구회에 참여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한다. 이 연구회의 사무국장은 이우재 전 국회의원이었고 사무국장은 황민영 전 농어촌농어업특별대책위원장이었다. 이 연구회에서 대학 강의실보다 살아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졸업 후 곽 전 총장은 최연소 조합장으로 고향인 달성군 현풍농협장에 취임했다. 20대에 지역의 기관장이 되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각 마을을 돌며 진심으로 조합원들을 모셨다고 회상한다. 임명제 조합장 시절 관료들은 젊은 조합장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조합원들의 지지로 3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농협의 금요강좌와 농촌봉사활동, 경북대 후문에 두레서점 운영, 5·18광주민주화운동 실상 유인물 살포 등 민주화운동으로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고 1년6개월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다.
출소 후 새마을청소년중앙연합회(현 한국4-H중앙연합회) 창립과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4-H회원들을 동생 내지는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힘썼다. 이후 새마을본부 연수원교수와 홍보과장을 거쳐 인천지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곽 전 총장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4-H연맹 사무총장을 맡아 일하면서 ‘한국4-H운동 50년사’ 발간,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 운영을 통한 4-H회원활동 프로그램 개발 보급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한국4-H연맹이 한국4-H본부로 통합된 것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4-H의 발전을 위한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곽 전 총장은 ‘이인동심(二人同心)’과 ‘난초향기(蘭草香氣)’란 두 고사성어를 좋아한다. ‘이인동심’이란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는 것을 말하고 ‘난초향기’는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특히 4-H활동을 하면서 이인동심과 같은 친구, 난초향기와 같은 동료들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온전히 4-H만을 위해 살았고 지금도 4-H만을 생각하는 곽 전 총장. 더욱 건강하게 4-H의 멘토로서 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밤을 새워도 끊이지 않을 이야기를 다 못 듣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두현 부장 dhcho@4-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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