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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 월간 제745호>
[자랑스러운 4-H인을 찾아서…] 김홍국 하림그룹회장
“4-H의 가치와 정신은 난관 극복하고 성공으로 가는 열쇠”

4-H가 자신의 꿈을 처음 펼친 마당이었고 아직도 그 정신과 이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김홍국 회장은 하림그룹을 연 4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저는 청소년기를 네잎 클로버와 함께 했습니다. 고교시절 4-H회원이었고 전국4-H중앙경진대회에서 입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4-H는 저의 꿈을 처음 펼친 마당이었고 아직도 그 정신과 이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지난 3월 한국4-H본부 회장 이·취임식에서 한 축사의 일부분이다.
하림그룹은 연 4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그룹이다. 본지는 자랑스러운 4-H인 김홍국 회장을 지난 11일 하림그룹 회장실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1957년 전북 익산 출신으로 익산농림고(현 익산대학)에 다니면서 4-H활동을 시작했다. 고교를 졸업하기 전에 사업에 뛰어들어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현재 하림, 천하제일, 팜스코, 선진, 농수산홈쇼핑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기본과 원칙이 중요하다”

김홍국 회장은 기자에게 먼저 ‘기본’과 ‘원칙’을 화두로 꺼냈다. 그는 “기본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5분 안에 죽는다”는 말도 했다. 즉 기본과 원칙은 공기처럼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다.
김 회장은 아무리 4-H의 뜻이 좋아도 그것에 무관심한 것은 현재 나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라 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는 좋다고만 생각한다. 미래와 진리를 말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지구는 둥글다’고 했던 코페르니쿠스가 그랬고 우리나라 개화기의 김옥균이 그랬다. 미래를 봐야 된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진리는 길다.
현상은 인기가 있다. 다수이다. 다수결이 반드시 진리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다. 선각자와 미래는 소수이다. 대중이 볼 때는 미련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미래를 내다본 소수가 옳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요지의 김 회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자는 글로벌기업인 하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기업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미래를 내다본 선각자 김홍국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거대한 탑이었다.
김 회장의 이 말은 4-H회원들에게 주는 교훈 또한 크다. 4-H의 이념과 철학은 기본이고 원칙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다. 4-H활동은 김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4-H회원들이 꿈을 처음 펼치는 마당이다. 4-H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은 그들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갖게 할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마치 큰 바위의 얼굴처럼 김 회장과 같은 거인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잘한 것은 열심히 일한 것뿐”

김 회장이 4-H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익산농림고 시절이다. 농업이 좋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고를 택했다. 열심히 활동했다. 결과는 상으로 주어졌다. 4-H경진대회에서 많은 상을 휩쓸었다. 그는 또 백양사 등에서 개최한 4-H야영교육이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전국 농고생들이 활동하는 영농학생회(FFK)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전국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회장은 수원농고에서 당연직으로 맡던 때여서 아깝게 못했다. 서울대 농대에서 열린 과제발표대회에서는 슬라이드를 만들어 발표했다. 장관상과 부상으로 자전거를 받았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하고 학교에 오면 다시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이 전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받은 상장들은 김 회장이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4-H박물관이 생긴다면 거기에 영구보존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김 회장은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일을 했다. 4-H와 일을 정말 잘 하니까 영농후계자 지원금을 신청하지도 않았는데도 당시 익산군농촌지도소(현재 농업기술센터)의 이선호 지도사가 상신해서 받게 되었다. 보증은 당시 친하게 지냈던 김중전, 고태곤 씨가 해줬다. 이들과의 우정은 지금도 변치 않고 있는데 고태곤 씨는 현재 하림의 고문으로 있다.

타고난 사업가적 자질

김 회장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11살 때 여름방학을 맞아 충남 논산군 연산면 신흥리에 있는 외가에 놀러갔다. 외할머니는 손자에게 병아리 10마리를 주었다. 김 회장이 닭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 순간이었다.
어린이 김홍국은 개구리를 잡아서 깡통에 끓여 쌀겨와 섞어 직접 사료를 만들어 먹였다. 때로는 부모님 몰래 쌀을 한 줌 집어 섞어서 먹이기도 했다. 지금 4-H활동으로 치면 초등학생4-H회원들의 병아리 기르기 과제활동이었던 셈이다.
김 회장은 이렇게 정성들여 기른 닭을 모두 팔았다. 동네에 닭장사, 오리장사, 개장사가 정기적으로 와서 사 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병아리는 한 마리에 7원, 닭은 250원이었다. 그는 닭을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다시 닭을 길러 판 돈으로 이번에는 돼지를 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돼지가 16마리나 됐다. 동물을 키우는 게 좋았고 돈을 버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렇게 시작된 농장은 점점 커져서 열여덟 살 되던 해에는 ‘황등농장’이라는 사업자 등록증을 가진 사장님이 되었다. 미성년자여서 사업자등록을 낼 수 없어 보증인을 세웠다. 배합사료 공장에서 사료를 사 와야 되는데 사업자등록이 없으면 공장에서 직접 사료를 살 수 없어서였다.
농장은 닭과 돼지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 원예도 하는 등 점점 늘어났다. 돼지만도 700마리나 됐다. 익산원예협동조합에 가입했는데, 조합원 번호 372번이었다고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마 밑의 모래를 긁어모아 시멘트를 섞어 블록을 만들어 축사도 직접 지었다. 작물을 키우는데 인분을 사용하던 때라 똥장군을 지고 가는 모습이 가정방문 다니던 전기수 교장선생님의 눈에 우연히 띄어 학교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85만 원짜리 오토바이를 사서 그 뒤에 리어카를 달고 황등에서 익산까지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이런 영농사례를 4-H과제발표대회에서 발표했으니 1등을 차지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김 회장은 20대에 종업원 30여명을 둔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일구었다. 당시 익산 시내의 집값이 300만원이었는데 이미 그는 4000만원을 손에 쥔 어엿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이때 두 가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김홍국이가 부모님 유산을 받았다는 것과 어쩌면 김일성이가 준 돈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받은 유산은 한 푼도 없었고 더군다나 북한의 공작금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소년 김홍국이 어려서부터 사업가적인 기질로 피땀 흘려 이뤄낸 성과였다.

세 번의 위기를 모두 기회로

김 회장은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기에 또래의 아이들보다 흔히 말하는 세상 물(?)을 일찍 마셨다. 이른 성공에 도취되어 있던 때라 현금이 늘 두둑하다보니 벽돌색 포니자동차를 타고 사람들과 곧잘 어울려 다녔다. 그것도 한때뿐이었다. 일찍 세상물정을 안 만큼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이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 무렵 김 회장이 이룬 성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위기가 닥쳤다. 전국 축산농가를 휩쓸었던 닭 값 폭락 때문이었다. 엄청난 불황에 시달렸다. 밤에는 돼지 막사에서 쪽잠을 잤다. 좌절과 후회가 엄습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식품회사에 입사해 영업부장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닭에 관한 책을 모조리 사 읽었다. 이때 발견한 것이 돼지 값은 폭락해도 소시지 값은 그대로인 것이었다. 이 발견이 바로 하림그룹의 ‘3장 통합경영’이다. 농장-공장-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하는 것이다.
시련은 오히려 그에게 더 큰 기회로 찾아왔다. 1986년에 하림을 설립했다. 때맞춰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양념치킨 체인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림은 급성장을 이루며 글로벌기업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졌다.
하림은 1997년 8월 420억원을 들여 대지 5만9400여㎡ 규모의 육가공공장을 증축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바로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이자가 무려 27%까지 뛰었다. 초현대식 공장을 가동도 못해보고 문을 닫을 상황이었다. IBRD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 유치 신청을 했다. 두 달 가까운 조사를 받은 끝에 IFC는 2000만달러 투자 승인을 확정했다. IFC는 하림의 경영 구조를 높이 평가했다. IFC 투자를 유치한 국내 1호 기업이 됐다.
2003년에는 화재로 공장이 전소되는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거기에다 조류독감까지 전국을 강타했다. 닭고기 소비는 급격히 줄었다. 주위 사람들은 회사가 곧 망할 거라 했다. 김 회장은 돈을 빌리러 찾아간 은행에 화재가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역설했다.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면서 브랜드파워를 높이겠다는 사업계획도 내놓았다. 이것을 은행이 받아들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성공시대’의 으뜸 주인공

1998년 MBC TV에서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를 방영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각계각층의 인사 60여명의 삶을 다루었다. 여기에 김홍국 회장 편은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각본과 촬영에 3개월이나 소요됐다. 대역이 출연해 중학교 3학년 때 가출해 황등역 앞에서 떠도는 모습을 비롯해 김 회장의 적나라한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성공시대를 모두 마치고 가장 감동적인 두 편을 선정했는데, 바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었다. 이 두 편은 비디오로 제작돼 전국 1만3000여개 초·중·고교에 배포됐다.
시련을 기회로 만들면서 성공시대의 주인공이 된 김홍국 회장. 기자는 김 회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는 4-H모토를 계속 떠올렸다. 바로 이 금언(金言)이 오늘의 하림그룹을 이룬 김 회장의 삶에 계속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 회장은 유성에서 열린 신용협동조합연구소의 영농교육에 참석한 바 있다. 이때 강의록은 프린트로 인쇄한 책자였고 강사는 일본인이었다. 통역은 미국사료곡물협회 한국지사장인 박영인 박사였다. 이 교육에서 김 회장은 1차 산업인 농업과 2차 산업인 가공, 3차 산업인 판매에 대해 처음 들었다. 김 회장은 어설프게나마 사료도 직접 만드는 등 통합경영을 시도했다. 당시 40여명이 교육에 참석했으나 모두 이론으로만 알 뿐 실천한 사람은 김 회장이 유일했다.
김 회장은 박영인 박사의 인솔로 미국의 농업현장을 살펴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이미 미국은 농업이 기업화되어 있었다. 김 회장은 거기서 보고 배운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 실행에 옮겼다. 이 모습을 본 박 박사가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백명 중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 말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한국4-H본부회장 이·취임식 축사에서 4-H의 가치와 정신이 오늘의 농식품산업 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H의 이념은 농식품산업의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경영의 핵심역량이라고 했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이라는 4-H모토도 강조했다. 농식품산업에 4-H이념을 적용한 김 회장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소개하며 4-H회원 가운데 제2, 제3의 김홍국 회장을 기대해 본다.
“명석한 머리는 곧 경영하는 머리이며, 충성스런 마음은 곧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며, 부지런한 손은 실행하는 손이며, 건강한 몸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내려는 몸가짐입니다”
 〈조두현 부장 dhcho@4-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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