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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격주간 제781호>
4-H인들의 상록수 이재호 지도자를 추모하며
지난 13일 고 이재호 지도자의 1주기를 맞아 파주시 재호농장에서 한국4-H국제교류협회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추모비 제막식을 가졌다.
고 이재호 지도자는 1939년 파주에서 출생해 평생을 4-H인으로서 농업과 4-H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60년부터 낙농업을 시작해 농촌근대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평생을 4-H이념으로 대한민국의 농업·농촌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고 이재호 지도자는 1965년 4-H국제교환훈련생으로 대만에 파견됐는데, 그 때가 우리나라와 대만과의 첫 번째 4-H국제교류였다. 이후 4-H국제교류의 첨병으로 나서 별세하던 해까지 국제교환 초청가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국농업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섰다. 또한 자녀와 손자들도 4-H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고인의 뜻을 기려 4-H인으로서 4-H국제교환 초청가정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추모비 제막을 즈음해 제막식에서 4-H후배 이영남 교수가 낭독한 추모편지를 통해 고인의 뜻을 기린다.

지난 5월 13일 경기 파주시 재호농장에 고 이재호 지도자의 추모비가 제막됐다.
<추모비 전문>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행으로 배우자”라는 4-H이념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청해 이재호 선생님 이곳에 잠드시다. 생전에 농업·농촌과 한국4-H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하신 님의 뜻을 기리고자 평소 당신님과 동고동락하던 4-H인들이 애틋한 추모의 마음을 모아 헌작하오니 흠향하시고 한국4-H운동이 지구촌 번영의 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2014년 5월 13일 한국4-H국제교류협회 회원 일동
존경하는 청해(靑海) 이재호(李在豪) 선배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작년 5월 초였습니다. 제가 저의 친구들과 통일전망대에 갔다가 선배님께 전화 드렸더니 파주의 유명한 매운탕 집을 소개해 주시고 아들이 입원해서 일손이 부족해 바쁘시다고 식사도 못하시고 떠나시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이 회장님, 과로하지 마시고 건강에 유의하십시오.”라는 말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1주일 후에 선배님의 타계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선배님의 추모 1주기를 맞아 선배님과 농촌의 향기를 마시며 교분을 나누던 선후배들이 모여 선배님의 생전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추모비 제막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은 1939년 경기도 파주시 월릉면 덕은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덕수상고를 졸업하시고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에 4-H활동을 시작으로 마을에서 초대 회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토끼 사육부터 시작하여 염소, 돼지를 기르다가 60년대 초에 젖소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선배님과 제가 인연이 된 것은 1965년 9월 7일 자유중국(대만)에 3개월간 한국대표로 파견되면서였습니다. 그 당시 구릿빛 얼굴에 자신감 넘치고 건장한 모습을 한 선배님은 항상 남을 배려하고 한국인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타이페이에서 농림성 관계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환영만찬 등 후한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각기 다른 지역으로 파견 되어 농가에서  영농현장과 농촌식생활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IFYE생들을 목장에 상주시키면서 목장 운영방법을 가르치셨던 열정을 누가 추월하겠습니까?
항상 향학열에 불타 주경야독으로 대학과정을 이수하셨습니다. 경기도농업진흥원(현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실시하는 각종 교육에 축산농가 사례발표자로 선정되기도 하셨습니다. 선배님은 최초로 도입소를 들여와 우유생산에 심혈을 기울여 파주에서 목장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하셨고 1967년 최초로 인공 수정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1년에 오토바이 2개가 소모 될 만큼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선배님은 1969년에 진흥원장의 중매로 경기도4-H연합회 여부회장이셨던 사모님(김상춘)을 일생의 반려자로 맞이하시는 행운을 가지셨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몇 년을 고생하면서 1972년에는 파주 축협 창립멤버로 수석이사의 직분으로 큰 일을 하셨습니다.
1994년에는 방광암 수술을 하시고 투병하시면서도 양돈 사업에 전념하시면서 돈사에 공기청정기까지 설치하는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008년에 선배님은 암이 골수로 전이되어 골수암과 함께 동거동락 하셨습니다.
돼지 육종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종돈장 운영 최종단계까지 갔을 무렵 2011년에 구제역 파동으로 2500여 마리 돼지를 다 쓸어 묻고 몸도 마음도 지치셨지만 항상 희망을 잃지 않으시는 선배님의 장인정신. 우리 4-H인들의 등불이자 희망이었습니다. IFYE 세계대회, 국내대회 등에 항상 참석하시어 축산인의 초석이 되신 선배님,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모습, 선배님이야 말로 농업, 축산업의 대부로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이룩하셨고 주위에 많은 사랑의 씨앗을 뿌린 4-H인들의 상록수이셨습니다. 못다한 일들을 아들(이준석)이 유업으로 받아 열심히 농장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흐뭇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이재호 선배님의 사모님, 아들, 며느리 모두 농장과 버섯 재배에 전념 하십니다. 또한 그토록 사랑하시고 아끼시던 손녀 하림이와 손자 동빈이도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4-H국제대회, 국내 대회에 참여하여 4-H정신을 이어받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저를 항상 동생처럼 아껴주신 배려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뚝이와 불도저이셨던 존경하는 선배님!
이제는 몸도 마음도 천국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2014년 5월 13일
4-H 후배 이 영 남 드림

평생 4-H국제교환훈련 초청가정이 되어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4-H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사진은 2011년 4-H국제교환 초청훈련에 참가한 대만훈련생과 함께한 이재호 지도자의 모습(좌측 두 번째)). 고 이재호 지도자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4-H국제교환훈련 대만파견생으로 선발돼 영농현장과 문화를 체험하며 민간외교사절로 활동했다(사진 우측부터 이재호 지도자, 이영남 교수, 타이페이 농림성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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