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양재 전 한국4-H국제교류협회장은 “4-H이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국가 사회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비롯한 도덕성 해이를 치유해야 된다.”면서 4-H의 역할을 강조했다. |
이 양 재 지도자 (전 한국4-H국제교류협회장)
하루가 다르게 성큼 자라는 농작물의 숨소리가 들릴 듯한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들판에서 잡초와 씨름을 하고 있는 이양재 전 한국4-H국제교류협회장(71·서울 강동구 구천면로 100길)을 만났다.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곳에 농장을 마련한 이 회장은 농작물을 가꾸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있었다.
기자를 본 이 전 회장의 첫마디는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 준비는 잘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4-H에 대한 그의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 전 회장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성금모금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물어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의 4-H인들이 하나가 되고 4-H가 우리 사회와 국가에 다시 한 번 이바지할 전기를 마련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성공한 4-H인들과 시도본부 회장을 비롯한 임원, 회원, 역대 연합회 회장단을 비롯한 4-H출신이 후원금 모금에 동참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대회 후원금 4-H가족 동참해야”
이 전 회장은 수원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 농업경영학과를 나왔다. 해병대로 입대해 청룡부대 제1진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이후 농업전문가로서 또 4-H교육자로서 애국·애족을 강조하며 농촌지도직에 자신을 불살랐다. 이 전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4-H에 대한 열정과 4-H회원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감탄한다.
그가 공직에 첫 발을 들여놓은 건 1969년 4월 1일. 강화군농촌지도소(현재 농업기술센터)였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관내 4-H육성에 헌신했으며, 여주군농업기술센터 농촌사회과장과 지도과장을 역임했고, 수원시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다 2002년에 퇴임했다. 35년간 4-H의 현장에서 회원들과 뒹굴며 살아왔다. 정년 이후에도 이 전 회장은 한국4-H국제교류협회장, 농촌여성신문사 사장 등을 맡아 4-H와 농촌사회 발전에 기여했으며, 지금도 제1회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 조직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처음 농촌지도직에 발을 들여놓은 신혼 초에 1년 먹을 장을 담가놓으면 반년이 못가 동이 나곤 했다고 한다. 회원들이 수시로 집에 드나들며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다음해에는 그에 대비해서 넉넉하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늘 부족했다. 섬 지역인 교동을 순회할 때면 통신이 여의치 않아 먼저 무전을 치고 갔다고 한다. 배가 포구에 닿으면 회원들이 늘 마중을 나와 반겨주었다. 며칠 동안 마을을 순회하며 월례회의를 갖고 다시 돌아올 때면 또 회원들이 포구에 나와 배웅을 했다. 이 모습을 본 군부대 관계자들이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마을의 청소년들이 이처럼 환대하는지 의아해 했다고 한다.
35년간 4-H현장에서 회원 육성
한 번은 국제기술교환훈련을 온 미국인 미스 가드너가 강화 지역에서 8주간 머물며 생활을 했다. 차편이 여의치 않아 50cc오토바이로 60㎏의 이 전 회장이 100㎏나 되는 외국인 처녀를 태우고 시골길을 다니는 모습은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외국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던 섬 지역 사람들에게 이 풍경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 이 외국인 여성이 목욕할 시설이 여의치 않아 천주교 수녀들이 목욕하는 곳으로 가서 해결(?)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기도농업기술원으로 전근해 수원으로 이사를 올 때에는 4-H회원들이 짐을 싸서 이사를 해줄 만큼 회원들과의 관계도 참으로 돈독했다. 국제기술교환훈련생으로 미국에 가 자리를 잡은 4-H제자들이 애틀랜타에서 열린 올림픽경기에 비행기표와 체류비 일체를 부담하겠다고 초청을 하기도 했으나 공직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거절한 일화도 있다.
당시 대부분의 회원들은 초등학교 졸업이었고, 중학교를 졸업한 회원이 간혹 있을 정도였다. 이들에게 새로운 지식, 특히 영농기술을 전파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 4-H가 낙후된 농촌지역에 새로운 문물과 생활문화를 전파하는 현장지킴이로 젊음을 불사른 이 전 회장은 “4-H가 있었기에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민-관 밀접한 파트너십 구축 필요
 |
| 이양재 전 회장은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에서 과거 4-H회원을 돌보던 마음으로 농작물을 가꾸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 |
이 전 회장은 “4-H운동이 1947년 이 땅에 도입된 이래 새로운 농사기술과 민주적인 생활방법을 보급하고 실천하여 우리 농촌에서 5천년 이끼 낀 가난을 몰아내고 산업사회로 진입하는데 중요한 디딤돌의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위정자들을 비롯한 사회분위기는 지난날 4-H운동의 빛나는 업적과 그들에게 보내주었던 열화와 같은 성원은 종적을 감추고 존재가치 마저도 모른척하는 형편을 안타까워했다.
그 원인으로 농촌인구의 감소라는 사회경제적인 여건변화와 4-H인들의 주인의식 결여 및 정부당국의 정책소홀이라고 지적한 그는 농업후계인력의 건전한 육성을 통해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살맛나는 농촌을 만드는데 앞장설 4-H회원을 육성하는 정책은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나 민간주도라는 미명아래 4-H사업 전반을 사회단체에 이관해 놓고 안이하게 대처해온 것이 오늘날 4-H육성사업의 현실이라면서 “민간주도로 사업추진은 하되 효과적인 사업추진을 위한 적정한 예산과 양질의 정책공급은 물론 건전한 관리감독을 통해 유기적이고 밀접한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 국가 사회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성폭력의 증가를 비롯한 도덕성 해이를 치유하는 길은 4-H이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전국의 학교4-H 건전생활 과제이수와 지도교사의 치밀한 지도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면서 학교4-H회 육성을 통한 4-H청소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두현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