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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15 격주간 제7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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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탐방] 4-H정신 바탕으로 나라사랑 앞장서다! |
송 석 응 지도자 (충북 음성군4-H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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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4-H활동을 통해 얻은 유·무형의 혜택이 삶의 큰 자산이됐다고 강조하는 송석응 지도자. |
일반인들에게 청결고추의 생산지로 유명한 음성에서 뜻밖에도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 사랑으로 명성이 자자한 ‘머슴’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머슴’은 대봉수목원을 운영하고 있는 송석응 지도자(62·충북 음성군 원남면 보덕로)였다.
송석응 지도자 부부가 직접 운영하는 수목원에 다다른 기자의 첫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송 지도자가 건넨 명함이었다.
명함에는‘무궁화 총각과 연꽃 처녀가 만나는 곳’,‘머슴 송석응, 마님 김창순’이라고 이채롭게 적혀 있었다.
‘마님 김창순’은 다름 아닌 송 지도자의 아내로, 아내 역시 4-H회원 출신인 이른바 ‘8-H 부부’다.
명함에 기재되어 있는 것처럼 송석응 지도자의 수목원에는 무궁화와 연꽃으로 가득했다. 음성군농촌지도소, 중원군농촌지도소, 괴산군농촌지도소에서 27년간 지도직 공무원으로 생활하고 퇴직한 송석응 지도자.
8년 전 초등학교 은사님에게서 새삼 무궁화의 역사에 관한 얘기를 듣고 8그루의 묘목을 받아 본격적인 무궁화 재배에 뛰어들었단다.
“일제강점기 때 무궁화가 수많은 고초를 겪었답니다.”라며 말문을 연 송 지도자는, “일제가 학교마다 조성한 무궁화들을 모두 뽑아 불살라버리고, 또한 무궁화를 아끼고 보존하는 사람들마저 투옥하고 탄압했죠.”라고 역설한다.
그 결과로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가 멸종 위기까지 몰렸던 가슴 아픈 시대 상황을 은사님으로부터 상세히 들은 송 지도자는, 현재 70품종 이상의 무궁화를 보유하면서 무궁화 분재 1000여분과 1만 6500㎡ 면적에 무궁화 조경수 1500주를 기르며‘나라 꽃’보급에 앞장서고 있었다.
아울러 가시연꽃, 물 양귀비, 수련 등과 같은 수생식물 재배에도 심혈을 기울여 농촌의 신소득 작목 개척에 이바지 하고 있었다.
특히 평소 ‘농업의 정보화’에 큰 관심을 가진 손석응 지도자는 전자상거래를 통한 매출 신장 및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손수 ‘블로그’와 ‘카페’운영을 통해 농업·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했을 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음성지역은 물론 이웃 괴산지역까지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지역의 방송, 신문 등에 100회 이상 출연하면서 농업인들에게 희망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4-H와 함께 보내
“이와 같은 성과는 모두 4-H활동을 통해 습득한 부산물입이다.”라고 말하는 송석응 지도자.
본인이 지금까지 있기에는 4-H활동으로 얻은 유·무형의 혜택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관내 음성고등학교 2학년 때 4-H활동을 시작했다는 송 지도자는 제17회, 18회 4-H중앙경진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27년간의 지도직 공무원 생활 중에 무려 10년 동안 4-H담당을 하며, 농촌의 뿌리인 4-H회원 양성에도 많은 세월을 보내 ‘진정한 4-H인’으로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었다.
농업·농촌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확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4-H회’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해 살아온 송석응 지도자.
청소년 시절 4-H활동을 통해 터득한 4-H금언을 바탕으로 ‘좋은 생각은 좋은 일을 만든다’라는 좌우명을 실천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송석응 지도자의 더 좋은 미래를 그려본다.
〈정호주 기자 skyzoo74@4-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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