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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H이념은 이 사회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남 숙 (시인·생태해석가)
113년의 역사를 지닌 4-H는 1902년 미국의 아이오와주와 오하이오주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 알갱이처럼 작은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19세의 젊은 선생님과 60세의 교육장이 만든 옥수수클럽이 모태가 되어 발전한 것이다.
새로운 변종씨앗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1910년, 버지니아주의 한 청소년은 국가 평균 옥수수 산출량이 ac당 1224kg일 때 4.7배나 많은 5700kg을 수확했다. 획기적인 농업기술과 농업교육이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면서 4-H의 급속한 성장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 4-H가 들어 온 것은 1947년, 경기도 군정관이던 찰스 앤더슨 중령이 각 시군에 농촌청년구락부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1940년대 회원 5만명으로 우리의 농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4-H는 문맹퇴치와 농민계도 운동을 해나가면서 1950년대는 한국전쟁 전후 복구를 위한 국가시책사업, 농촌재건운동과 연계하며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1960~70년대에 들어서 4-H는 본격적인 육성·발전 기틀을 마련해 회의의 생활화와 농업기술 보급을 중심으로 새마을사업과 연계하여 농어촌 환경개선, 농업생산 기반정비 등 농촌생활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 100만명에 달한 회원수는 이후 급격한 산업발전과 도시화로 약간의 정체기를 겪기는 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 학교4-H회를 확대하고 4-H회원 교육을 강화하며 특화 작목 등 새로운 농업 활로를 열어가는 지속적인 노력을 해 왔다.
2000년대에 들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한 4-H운동은 21세기에 맞춘 농업, 환경 활동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생명운동차원으로 승화시켜 활동해 나가 글로벌4-H네트워크의 구심체로 성장했다. 지·덕·노·체 4-H이념의 실천자로서 여전히 이 사회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옥수수 밭에서 시작된 작은 생각이 100년의 역사 속에서 세계 70개 이상의 국가에서 활발하게 전개됐고,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로 그 꽃을 피우며 제2의 도약을 시작했다.
70여개국 160여명을 비롯해 인원 1만여명이 참여한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에서 학창시절부터 4-H회원으로 활동한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사례발표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병아리 열 마리를 키워 연간 매출액 4조원의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인들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하며 매료됐고, 그들의 마음에 꿈의 씨앗을 품으며 감격했다. 그들은 한없이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농부가 씨앗을 심는다. 반드시 싹이 난다는 신념과 확신이 있기에 가꿀 의지를 갖고 실천을 한다. 그리고 결실을 얻는다.
요즘 청소년에게 꿈이 없다고들 말한다. 4-H가 꿈의 씨앗을 나눠주고 그것을 심고 가꿀 수 있는 신념과 확신을 농업생태체험활동을 통해 실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단순한 진리를 스스로 보고 관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직업은 농업인이다. 이것은 진리다. 청소년들에게 진리를 관찰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내재된 가장 잘 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찾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방향성을 자기주도적으로 찾을 수 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것을 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고, 그 성공과 함께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지난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는 4-H가 부흥할 계기가 되어줌으로써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 아주 큰 선물을 주었다.
4-H 부흥이야말로 이 시대 전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고귀한 가치실현이기 때문이다. 세계대회를 개최한 개최국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4-H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인류역사에 크게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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