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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5 격주간 제8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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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H동문 우리들의 이야기] 지·덕·노·체 네잎다리 클로바? |
박 혜 숙 효성여대4-H연구회연합회(73학번)
어릴 때 아버지의 고향인 김해에 자주 성묘를 가던 육남매를 늘 자랑스럽게 앞장서신 아버지와 그 뒤를 줄줄이 사탕마냥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향은 자연이었고 자연을 만나는 어귀마다 지덕노체 크로바 그림이 있었다. 아주 초록의 짙은 페인트로.
자연 속에 놀기를 좋아하고 동물보다는 식물이 좋았던 나는 대학 선택과 전공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 없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육남매를 키우시는데 얼마나 힘드시냐고, 대구에는 외가가 있으니 여러 가지 생활교육에 보탬도 될 테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으니 효성여대 원예학과로 가겠노라고 고집을 부려 입학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 재미있는 후배 모객에 끌려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전국연합서클 대학4-H연합회! 아니 마을 어귀마다 있던 그 4-H? 그래 나는 원예과이니 농대 쪽이고, 그럼 저 서클로! 4-H.
효성여대4-H 활동을 하면서 끈질기게 남는 기억은 여름, 겨울 정기 봉사활동 경험이다. 겨울은 계절적인 요인으로 사년 간 꾸준히 진행 못된 아쉬움은 남지만 여름 봉사활동은 참 빡시고도 길었다. 먹을 걸 제대로 주길 하나, 어린 나이에 타관 객지에서 더위에 익어가며 굶주린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어느 날 밤, 마을 어린아이들에게 줄 간식에서 10원짜리 뽀빠이 하나를 몰래 꺼내서 덩치가 나만한 친구랑 둘이 나눠 먹다가 동기 모모 양의 고발로 우린 밤새 잠 한숨 못자고 반성문을 썼었다. 그 후 나는 뽀빠이가 두렵다. 시험 공부하다가 잠이 오면 뽀빠이 한 봉지만 갖다 두면 잠이 번쩍 달아났다. 졸음운전에도 뽀빠이는 언제나 나를 지켜준다.
봉사활동간 시골의 통시에는 똥이 송곳처럼 솟아올라 궁뎅이를 찔리게 생겼는데 봉사하러 왔다면서 똥 쳐 달란 소리는 못하고 직접 똥을 치웠었다. 돼지우리 청소를 하면서도 돼지똥을 한줌은 먹었으리라. 굶주렸다고 자의로 먹었다고 오해는 말길.
겨울 봉사를 가면 제실의 구들목이 너무 뜨거워 화상을 입을 뻔도 하고, 우리 방 땔감은 우리가 장만한다고 지게에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던 기억이 난다.
어디 가서 돈을 주고 살 것인가. 억지로 지어내서 해 볼 것인가. 너무 너무 신나는 살아있는 나의 역사를 대학4-H가 만들어 준 것이다.
대학4-H는 내게 많은 걸 요구하지도 나 또한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별다른 쓰라림 없이 즐겁게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의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았다.
여러 지방에서 모인 같은 또래 여학생들도 말과 행동과 문화적 양식이 엄청 다르다는 걸 알았고 사람의 개성이란 걸 가까이서 수긍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을 눈여겨 살피는 공부를 많이 했고, 편안한 책만 읽던 내게 세상은 골치 아프고 어렵지만 읽어내야 하는 책들도 있음을 알려주었다. 내가 알던 세상은 부모님들의 위치에서의 시선에 길들어 있었다면 젊은 시선과 젊은 시각도 존재함을 알게 된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아무런 사회적 준비 없이 사회인으로 그나마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학4-H활동을 통한 폭 있는 인간관계 구성에서의 학습 효과라고 생각 된다.
어떤 경우 대학의 동기, 선후배를 만나 우리 4-H는 졸업하고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만난다고 하면 다들 놀라고 부러워한다.
단체에서 시골로 갈 기회가 생기면 농정에 관해 아는 체하고, 시설물에 대해서도 아는 체를 한다. 그리고 지금도 경제뉴스 중에 농정뉴스에 눈이 가는 건 버릇이다.
만고에 도움이 안 되는 내 나름의 관심일 뿐이고, 살아있는 허풍선이지만 이 또한 아무 근거 없이는 안 될 일. 다 4-H에 세뇌된 뇌구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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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전국대학4-H연구회 크로바향연이 1973년 10월 전남대에서 개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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