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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실천하는 농촌의 4-H회원들이 더욱 든든하고 믿음직했다"
서 석 규 (동화작가·전 언론인)
반세기 전 1960년대 후반이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10년이 지났어도 촌티를 벗지 못한 신문기자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늪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던 때였다. 사람들은 어디엔가 있을 희망의 싹을 찾느라 분주했다. 안정을 찾은 군사정권도‘희망의 싹이 어디에 있을까?’하고 찾고 있었다. 신문들도 늘어난 지면에 담을 ‘희망의 싹 찾기’에 바빴다.
나는 가끔 수원엘 갔다. 서울대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에서‘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의 농촌과 농업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젊은이들을 만나‘새길 농업연구회’를 만들어 이들을 격려하며 협업마을을 찾아가곤 했다. 그 무렵 농진청 관계자의 안내로 네 잎 클로버가 싱싱한 4-H를 만났다. 거기에 희망의 싹이 있을 것 같았다. 4-H 기사가 신문지면에 자주 올랐다. 여름 지도자 연찬회에도 참석하고 경진대회도 가 보았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눈망울이 반짝이는 4-H회원들의 활동을 보면서‘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믿음이 커갔다.
그 무렵 어느 날 일류학교라고 소문난 한 명문중학교를 찾게 됐다. 내 고등학교 시절 존경하던 은사 한 분이 그 학교에 계셨다. 책을 무척 좋아하시는 선생님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콩 한 홉 볶아 가방에 넣고 나와 허기를 달래며 책을 읽던 선생님이었다. 항상 주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금과옥조의 귀한 교훈이었다. 마침 방과 후였다. 몇 가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뒤 선생님은,“학교 구경이나 하고 가게.”하시며 불쑥 자리에서 일어서셨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교실마다 청소를 하느라 소란했다. 책상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뒤로 죽죽 밀어 모으는 교실도 있었다. 걸레를 집어던지면서 책상 위를 뛰어 다니며 왁자지껄한 곳도 있었고, 걸레질을 하는 교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걸레질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징그러운 뱀이라도 잡은 듯이 걸레 끝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 양동이 물에 풍덩 담갔다가 건져 철퍼덕 마룻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한쪽 발로 밟고 이리저리 바닥에 물 칠을 하고 있었다.
“저 아이들이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적인 세력이 된다네. 나무라는 선생도 없고 나무란다고 듣는 학생도 없다네.”
선생님의 이 한마디 말씀은 지금까지 그 여운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농촌에서 묵묵히 자기 과제를 이수하는 4-H회원들의 믿음직한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명문학교 학생들의 청소하던 모습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곤 했다. 스스로 과제를 선택해 한 단계 한 단계 성취해가며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건전하게 다듬으며, 부지런히 봉사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실천하는 농촌의 4-H회원들이 더욱 든든하고 믿음직했다.
지금 세상은 반세기 전에 걱정하던 일류명문학교 수재들 집단이 주축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효율성 위주의 정책은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은 도시형 국가가 모델이 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어울려 공존하는 나라들도 많건만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두 가지의 과제를 함께 생각해보자.
하나, 축산을 포함해서 모든 농사는‘농업기술인’이 맡아야한다. 농업기술인의 자격을 엄격하게 정해서 그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 자금과 기술을 전적으로 지원한다. 자금, 자재와 판매는 농협이 맡고 기술과 작업 지도는 농촌진흥청이 맡고 농업기술인은 정해준 작업진행표대로 일만 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농민이 행복한 나라에서 모델을 찾아야한다. 열악한 여건의 농민에게 각자가 영농계획을 세우고 각자가 생산하고 판매해 수지를 맞추라는 한국을 보고 “너희 나라에는 협동조합이 없느냐?”고 묻는다. 귀농·귀촌을 외치면서 도시에서 일없는 사람 시골로 가라면 농민과 농촌이 행복해 지겠는가?
둘, 자연체험은 지구인 누구나 갖춰야할 필수 소양이다. 어릴 때부터 산과 들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을 배우고 익힌 사람은 생명의 어울림을 체득하고 있다. 자연과 단절된 궤짝 속 같은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사육 당하듯이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체험은 더욱 소중하고 절실하다. 선진국들이 국가 정책의 중점을 여기에 두고 학교교육과 성인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똑바로 봐야 한다.
전국의 4-H회원들이 자연체험 과정을 이수하고 대열의 선봉에 나서서 이끌어가도록 하는 정책의 대전환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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